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서글픈 사랑이 스며 있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높이 130m, 폭 182m로 지어진 비교적 작은 이슬람 궁전이다. 하지만 이슬람 최고의 건축물로 꼽히는 이 궁전은 인간이 빚어 놓은 거대한 예술품이다.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르는 궁전은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대리석이 그의 음악만큼이나 수려하다.
19세기 초반 미국의 문학가이자 외교관이던 워싱턴 어빙은 `알람브라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알람브라 궁전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내가 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마치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온 것처럼 끊임없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는 어떤 힘을 느꼈다."
756년 아랍계 이슬람교도인 무어인에 의해 건축된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문화를 화려하게 꽃 피운 결정체이자 지금까지 옛 아랍 문화의 영광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이슬람 특유의 신비감과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알람브라 궁전은 사비카 언덕 위에 있다. 시내 중심가인 누에바 광장에서 1㎞가량 숨가쁘게 고메레스 언덕길을 올라가면 알람브라 궁전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알람브라는 1238년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쫓겨 온 이슬람 왕국의 유수프왕 때부터 짓기 시작해 대대로 증축을 거듭하여 1323년에 완성되었다. 성수기인 여름철이면 궁전 앞은 그야말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알람브라는 붉은 성곽을 가진 알카사바, 알람브라 궁전, 여름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헤네랄리페라 등 크게 세 지역으로 나눠진다.
신이 만든 창조물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완벽하게 만든 것이 인간이라면, 알람브라 궁전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함의 극치를 이루는 알람브라 궁전의 대리석은 마치 나무나 찰흙을 깎아 놓은 듯하고 신의 능력에 도전하려는 듯 아름다운 조각과 문양이 궁전 내부를 온통 장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알람브라 궁전이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은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가 이루는 극한 대조성과 건물의 대칭성이다. 마치 아랍의 여인이 검은 차도르 사이로 바라보는 바깥 세상처럼 궁전 내부는 명암이 교차하는 빛의 향연으로 사람들에게 황홀감을 안겨 준다.
알람브라 궁전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방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방들은 조금씩 다른 특색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라베스크 양식의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독특한 아랍 양식의 궁전 설계며 벽면 대리석의 음각과 고대 이슬람의 코란으로 메워진 벽면들을 보다가 지나가던 아랍 여행객들의 "알라신만이 승리자다"는 중얼거림까지 듣는다면 스페인이 아닌 아랍 국가 중 어느 한 나라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알람브라 궁전 내부에 들어서면 이러한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건축물이 있다.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시키는 아라야네스(알람브라 궁전 가운데에 있는 정원)는 아랍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생명의 근원인 연못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세련되고 예쁘게 정돈된 회양목이 자라고 있으며, 수압 차를 이용해 조성한 연못에는 높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흘러온 물이 1년 내내 일정한 양으로 고여 있고, 잔잔한 연못에 비친 건물은 대칭을 정확히 이루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헤닐강과 다르로 강이 합류하는, 높이가 670m나 되는 언덕까지 자연 상태 그대로 수압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정원에 아름다운 분수를 만든 것이다. 인위적인 손길이나 과학적인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 수압을 그대로 이용해 만든 분수,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건물 등 알람브라 궁전은 훗날 인도가 타지마할을 지을 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알람브라 궁전의 또 다른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는 정원으로 가보자. 사각형의 정원수, 줄지어 있는 작은 연못들…, 여름 정원이라 불리는 헤네랄리페라 정원에서도 이슬람 특유의 정원 양식이 풍긴다. 사람보다 훨씬 큰 나무들을 사각 모양으로 깎거나 터널처럼 통로를 뚫고 그 사이로 작고 귀여운 분수들을 놓아 정원 예술의 미를 한껏 높이고 있다. 사람이 없는 시간이면 귓속으로 밀려드는 물소리가 마치 타레가의 멋진 기타 소리처럼 들린다.
△가는 길=
대한항공에서 인천~마드리드 구간 직항편을 주 3회(수ㆍ금ㆍ일) 운항한다. 비행 시간은 15시간 40분 정도. 마드리드에서 그라나다로 가는 직항이 하루에 1편 운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