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인 여행의 계절이 찾아왔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여지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여행 마니아들은 이내 머릿속에 낭만적인 나라 스위스를 떠올린다. 스위스는 그리 크지 않은 나라지만 각각의 도시들은 독특한 개성을 자랑한다.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베른을 비롯해 취리히, 제네바, 루체른, 로잔 등은 스위스의 얼굴 역할을 하는 도시들이다. 춥고 긴 겨울을 보낸 스위스 곳곳에서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크고 작은 봄축제를 개최한다. 대표적인 봄축제로는 바젤의 카니발, 제네바의 튤립축제, 루체른의 파스나하트 등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유럽에서 가장 큰 봄맞이 축제인 섹세로이텐이 가장 유명하다. 해마다 4월에 열리는 섹세로이텐은 많은 관광객들을 취리히로 불러들이는 효자노릇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스위스 사람들에게 봄은 반가운 손님과도 같다. 아직은 간간이 매서운 바람이 부는 3월. 하지만 스위스 곳곳에서는 봄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취리히의 봄축제인 섹세로이텐은 그 가운데서도 유난하다. 4월이 돼야 열리는 축제를 위해 벌써부터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축제가 그렇듯 본격적인 축제시즌이 되면 취리히 시내 전체는 순간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다. 취리히 사람들은 물론이고 구경 나온 관광객들도 한데 어울려 기꺼이 신나는 봄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섹세로이텐은 `6시의 종소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마다 춘분(3월 21일)이 되면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에서는 저녁 6시에 종을 쳐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오늘날 취리히에서 열리는 섹세로이텐은 바로 이 같은 전통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축제가 열리는 시기는 4월 셋째 일요일과 월요일이지만 이미 3월부터 취리히 전체는 봄축제 준비에 한창이다.
본래 섹세로이텐은 수백 년 전에 취리히의 무신론자들이 봄을 맞이하는 자그마한 축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취리히소년회에서, 1892년부터는 취리히 길드조합에 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섹세로이텐의 본격적인 행사는 4월 셋째 일요일(올해는 4월 18일)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이미 3월부터 전통의상을 구입하거나 대여한 어린이들이 하나 둘 반호프 거리에 모여들면서 축제는 그 열기를 더해간다. 각양각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2000여 명의 어린이들은 취주악단의 연주에 맞춰 국회의사당까지 행진을 하면서 축제의 열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어린이들의 행진에 이어 그 다음날인 월요일에는 길드의 행진이 취리히 시내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7000여 명의 길드 조직원으로 이뤄진 길드 행렬은 주 행사장인 섹세로이텐 광장까지 이어진다. 이 길드 행진에는 대규모의 취주악단과 함께 500여 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 행렬이 가세해 더욱 멋진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행렬은 취리히를 찾은 여행자들에게도 특별한 추억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섹세로이텐의 대미를 장식할 광장 한가운데에는 약 13m 높이의 장작더미 위에 눈사람처럼 생긴 `뵈그`가 세워져 있다. 짚으로 만든 키 3m 내외의 눈사람인 뵈그는 겨울의 노인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6시 정각이 되면 장작에 불을 붙이는데 불길이 거세지면 뵈그에서는 연달아 불꽃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뵈그의 머리 부분에 설치한 100여 개의 폭죽들이 열을 받으면서 하나 둘 터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겨우내 안고 있던 어둡고 무거운 생각들을 털어버리고 활기차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섹세로이텐은 취리히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함과 동시에 그들의 오랜 전통을 소중하게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월요일 오후를 공식 휴일로 정하면서까지 주민들, 특히 어린이들을 축제에 참여하게 한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취리히의 길드 조직들이 그들의 건재함과 결속을 다지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섹세로이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길드는 중세 유럽 당시 막강한 조직력을 유지했던 일종의 동업자(상인 또는 수공업자)조합이다. 우리나라의 보부상 조직과 유사한 형태인 이 조직은 10세기 말에 처음 결성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위스는 물론이고 유럽의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길드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나마 이곳 취리히에서 길드의 옛 모습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는 정도다.
오늘날 스위스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로 우뚝 서기까지는 `길드 조직`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취리히에는 20여 개의 길드 조직이 있는데 이 가운데 10여 개는 1336년 무렵에 처음 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취리히의 젖줄인 리마트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길드 하우스` 또는 `춘프트 하우스`라 불리는 전시장들을 만날 수 있다.
■ 취리히의 관광명소
취리히의 여행 중심지는 반호프 거리다. 중앙역에서 취리히 호수까지 이어지는 이 거리는 고급 상점과 백화점, 은행 등이 밀집된 세계적인 쇼핑가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지만 결코 불편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구경거리가 많다.
취리히는 `첨탑의 도시`라 불러도 좋을 만큼 성당과 교회가 많다. 대표적인 곳으로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프라우뮌스터 성당, 바세르 교회, 성 베드로 교회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은 스위스에서 가장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츠빙글리가 1519년부터 이 성당에서 설교한 이후로 `종교개혁의 어머니 교회`라 불리기도 한다.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의 쌍둥이 탑은 취리히를 상징하는 명물 가운데 하나다.
리마트 강을 사이에 두고 그로스뮌스터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프라우뮌스터 성당은 제단 위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한 성당이다. 샤갈이 그의 나이 83세 때인 1970년에 이 성당의 소박한 모습에 반해 스테인드글라스를 기증했다고 한다.
바세르 교회는 후기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이 교회 앞에는 종교개혁가이자 목사인 츠빙글리 동상이 있으며 근처에는 그가 살았던 집이 있다. 성 베드로 교회는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탑으로 유명한 곳. 시계판의 크기는 직경이 8.7m이며 시곗바늘의 길이도 3m가 넘는다. 취리히에서 가장 오래된 이 교회는 1534년에 세워졌다.
■ 교통정보
△가는 길=
대한항공에서 인천~취리히 구간 직항편을 주 3회(화, 목, 토)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약 14시간이 소요된다.
△사진제공=스위스 정부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
[글 = 송일봉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