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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융프라우 하이킹, 오를 땐 산만 보이더니, 내려올 땐 삶이 보이네!
▲  스위스 융프라우 지역의 바흐알프 호숫가에서 등산객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도보 여행’이 최고 유행입니다. 몇 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에서 시작되더니, 어느 순간 전국 곳곳에 각종 ‘길’이 생겨났습니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 ‘강화 나들길’ 등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잠시 피해 ‘길’에서 인생을 들여다보려는 기대가 뜨겁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래서 이 길들은 모두 ‘도보 명상’ 코스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박자에 맞춰 걷다 보면 머리에 잡념이 사라집니다. 그저 걷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고, 온통 제 발에만 정신이 집중되면서 순간 무상무념의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일정 간격으로 반복되는 제 발걸음은 목탁이 되고, 그 순간만큼은 속세를 떠난 구도자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스위스 융프라우 지역에서 만난 ‘길’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은 힘든 순간마다 다시 걷게 하는 자양분이었고, 산꼭대기 빙하에서 밀려 내려온 맑고 차가운 공기는 퍼뜩 정신을 차리게 하는 죽비 같았습니다. 이 길에서도 정상을 맛보고, ‘업 앤드 다운(up&down)’이라는 굴곡을 느끼고, 경사길을 따라 내려와야 하는 인생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길은 우리네 길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먼저 역사가 오래된 산길입니다. ‘젊은 여자’라는 의미의 융프라우는 로마 시대에 이름 붙여졌다고 하니, 족히 2000년은 훨씬 넘은 길이겠지요. 분명 그때부터 인간이 만든 길인데도, 인위적인 냄새가 적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목동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이어서 그럴까요. 때마침 스위스 여행 직후 찾은 제주 올레길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가장 유명하다는 올레길 7번 코스 대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진 덱으로 이뤄진 길이라면, 융프라우 지역의 하이킹(hiking) 코스는 모두 흙으로 만들어진 길이었습니다. 도회지 인간을 위한 편의성보다는 목동과 젖소를 위한 편의를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북적북적하지도 않았습니다. 융프라우 턱밑에서 클라이네샤이텍 역까지 내려오는 1시간여 동안 하산길은 모두 저희 일행 차지였습니다. 위대한 자연 앞에 홀로 선 인간, 그 자체였던 셈이지요.

이 길이 매력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내려오는 길’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하산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미처 올라갈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하강’의 즐거움이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목적을 향해 숨에 차서 급하게 오를 때는 절대 볼 수 없는 절경이 느릿한 하산길에 펼쳐졌습니다. 4000m가 넘는 저 높은 봉우리에 위압당하지 않고, 과감히 등을 돌려 아래를 향해 내려올 수 있다는 자신감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먹고 걷기 시작하면 삶의 여유가 넘실대고,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는 묘한 착각에 빠집니다. 물론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겠지요. 하지만 기억은 명료할 것입니다. 시인 고은이 ‘그 꽃’이라는 시에서 단 2줄로 표현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에 대한 기억 말입니다.인터라켄·그린델발트 = 글·사진 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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