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는 낯선 나라다. 세계지도에서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겨우 찾아낼 수 있다. 한반도 크기의 11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도 200만명이 전부라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슬로베니아는 예쁜 나라다. ‘발칸반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나라 전체가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슬로베니아 국토의 60%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단다.

유럽 배낭여행의 신흥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슬로베니아를 다녀왔다. 슬로베니아에서도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블레드(Bled) 지역을 소개한다. 지금은 아직 한국인이 드물지만 이내 한국인 단체 관광객의 물결이 물 밀듯이 몰려들 것이라 확신한다.

파란 하늘 아래 눈 덮인 하얀 산.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간 지붕. 다시 파란 호수와 그 속에 작은 섬. 블레드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슬로베니아는 유럽에서 작은 스위스라고 불린다. 그 이유가 바로 블레드 때문이다.

블레드는 슬로베니아 최고의 명승지다. 수도 류블라냐에서 기차를 타고 40분이면 갈 수 있어 주말마다 나들이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 블레드는 자그마한 호수마을이다. 마을 가운데 있는 호수를 에두르며 마을이 형성돼 있다. 중세시대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족들이 여기에 빌라를 짓고 휴양을 했다고 전해질 만큼, 블레드는 오랜 전통의 휴양 도시다. 블레드 호수는 둘레가 6㎞ 정도로, 여유를 두고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한여름에는 호수를 순환하는 미니 관광열차가 운행된다.

호수 한가운데 그림처럼 떠 있는 섬이 있다. 서울 밤섬이 연상되는 작은 섬이다. 그러나 이 섬은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한 섬이다. 그만큼 특별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말로 슬로베니아에는 섬이 이 것밖에 없다. 슬로베니아에 인접한 해안은 대부분 이탈리아 영토여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해안이 40㎞에 불과한데, 그 앞바다에는 섬이 없단다.

그 섬 안에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성당은 슬로베니아 관광 엽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명소다. 6세기 슬라브인이 지바 여신을 모신 자리였으나 8세기 들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성당이 들어섰다. 성당에는 소원을 이뤄준다는 ‘행복의 종’이 있다. 성당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종을 흔들어 주말엔 종소리가 끊이지 않는단다.

성당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결혼식 장소다. 성당에 사랑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뱃사공이 노를 젓는 전통 나룻배 ‘플레트나(Pletna)’를 타고 섬에 도착하면 성당까지 이어진 99개 계단을 걸어서 올라야 한다. 이 계단에 얽힌 전통이 재미있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신랑이 신부를 안고 이 계단을 끝까지 올라야 한단다. 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부부가 밧줄을 잡아당겨 종을 울려야 비로소 식이 완성된다.

호숫가 산책을 마치고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블레드 성에 올랐다. 성은 호수를 바투 끼고 있는 100m 높이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성 위에 오르니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1004년 브릭센 대주교가 독일 황제 헨리크 2세로부터 블레드 지역을 받은 뒤 성을 짓기 시작해 18세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성당 옆 작은 박물관은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었다. 성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수도사가 직접 담근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호숫가에 북한 김일성 주석도 방문한 적 있다고 하는 구 유고 연방의 티토 대통령 별장도 있다. 과거엔 정상회담 장소로 자주 사용됐는데, 지금은 호텔로 개조됐다. 티토 대통령 별장처럼 호수 주변에는 유서 깊은 호텔과 빌라를 비롯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곳곳에 널려있다. 블레드 여행을 마치고 여기서 마시는 커피는 꿀맛이었다.

슬로베니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여행정보=블레드를 가려면 유럽 전역을 운행하는 유레일(www.EurailTravel.com/kr) 티켓을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하다. 블레드는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운 곳에 있어 오스트리아ㆍ크로아티아 등 인근 국가에서 도착하고 출발하는 작은 국제선 전용 기차역이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