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동쪽으로 약 60㎞ 정도 달려가면 브르흘리체 강을 굽어 볼 수 있는 은광의 도시, 쿠트나호라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기분전환을 하기에 적당하고 꾸밈없는 삶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활기찬 도시이면서도 가볼 만한 명소가 많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유럽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은광산과 고딕 양식의 성 바르보라 성당 그리고 성모 마리아 대성당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구시가를 가득 메우고 있다.
◆ 고풍스런 중세이미지 간직한 도시
13세기 은광이 개발되면서 광산촌을 중심으로 독일인과 체코인들이 하나 둘씩 쿠트나호라로 모여들었다. 14세기부터 체코의 주화인 그로슈가 바로 이 도시에서 생산되자, 바츨라프 2세는 왕실 거처인 블라슈스키드부르 안에 왕립 화폐주조소를 세워 이곳을 프라하 다음으로 가는 도시로 발전시켰다. 그 후 쿠트나호라는 왕족과 귀족들의 관심 그리고 은광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은을 바탕으로 프라하만큼 성장하게 되었다.
1700년까지 쿠트나호라는 유럽에서 사용되는 동전의 대부분을 만들었을 만큼 은광이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화수분처럼 끝없이 나올 것만 같았던 은광이 16세기 중반에 들어서자 점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금기가 끝날 무렵 이 도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갔고, 그동안 프라하에 맞설 만큼 엄청나게 성장한 쿠트나호라는 모든 기득권과 경제권이 다시 프라하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도시의 막강한 힘도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 후 혹독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종교전쟁 이후에 다시 은맥을 찾으려는 시도가 몇 번 있었지만 옛날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도시는 쇠퇴했다. 1770년 큰 화재로 도시는 화염 속에 파묻혔고, 은광도 완전히 폐쇄되었다.
쿠트나호라는 은광이 없어지면서 체코 역사에서도 잠시 빗겨 앉았다. 하지만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성 바르보라 성당과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경제의 도시에서 문화ㆍ역사의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프라하의 비타 성당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고딕양식이 일품인 성 바르보라 성당은 14세기 왕실의 도시로 지정되어 막강한 부를 누리던 도시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당시의 부가 얼마나 굉장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도시의 상징 아이콘이다. 우선 1338년에 지어진 성 바르보라 성당은 황제의 왕관 모양을 본뜬 석조 건물로 중세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화려하게 장식한 실내에는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표현해놓은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대성당은 쿠트나호라를 찾은 관광객들이라면 꼭 들러보아야 할 명소다. 바로크 스타일로 개축한 성당은 중부 유럽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북쪽 예배당에 있는 성 이그나시우스의 벽이다.
◆ 눈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거리를 걷다
화려한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재된 성당을 나오면 비탈 아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골목길과 길을 따라 들어선 앙증맞은 집과 카페 는 차분한 오후의 햇살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세계문화유산의 도시답게 어딜 가도 눈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이곳에서 관광용 마차를 타고 도시 전체를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좋고,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서 체코의 명품 필스너 맥주 한 잔에 삶의 여유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중세의 멋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에서 목적지도 없이 마냥 걸어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해도 모두 중세의 우아함이 묻어난다. 이곳에서 3㎞쯤 떨어진 새들레츠에 가면 아주 섬뜩한 광경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더없이 사랑스러운 중세의 마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성모승천교회 때문이다. 일명 `뼈의 교회`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지오반니 산티니가 설계한 것으로 고딕 양식의 예배당으로 가는 길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중세시대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쿠트나호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후스 전쟁을 통해 수만 명이 죽게 되자, 죽은 자의 가족들이 좋은 장소에 그들을 묻고 싶어 몰려든 곳이 바로 성모승천교회다. 넘쳐나는 뼈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교회는 프란티섹 린트라는 목각사에게 그 뼈들을 작품재료로 써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 그는 뼈를 이용해 슈바르첸부르그 가문의 문장이며 샹들리에, 성배 같은 물건들을 만들었다. 이런 괴기스러운 작품들의 이면에는 사람들에게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가는 길=체코의 수도 프라하까지는 대한항공이 주 3회 운항한다. 쿠트나호라까지는 프라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면 1시간 소요.
[글 / 사진 = 이태훈 여행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