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 사막의 심장에서 떠오르는 황금색 신기루와 같은 도시 자이살메르. 황량하고 척박한 사막의 한 귀퉁이에 세워진 이 도시는 벌꿀과 같은 금색의 자이살메르 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황금의 도시(Golden City)`라고 불렸다. 그 이유는 벌꿀처럼 달콤한 태양빛이 밀가루처럼 보드라운 사막과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성, 그리고 도시 전체를 노란 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타르 사막 위에 핀 노란 민들레의 도시 자이살메르는 1156년 야다브 족의 후손인 바티 라지푸트 라왈 자이살에 의해 건립된 도시다. 거대한 모래성을 가진 이곳은 수 세기 전부터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곳이자, 지금은 라자스탄 서북부의 철도 요충지로 성장했다. 과거 상인들이나 도시 주민들은 이런 부를 바탕으로 훌륭한 집을 지었고, 나무와 사암을 이용해 아름다운 장식을 새겨 넣어 더욱더 화려한 예술의 미까지 보여줬다.
황금의 도시를 건설한 `바티 라지푸트`는 이 지역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작은 영주들을 물리치고, 델리와 신드 지방 등의 도시와 향신료와 비단을 거래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해 이 일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자이살메르의 귀족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고성(古城) 옆에 호화스럽고 우아한 저택을 많이 지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살림 싱 키 하벨리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이 지역의 재상을 지냈던 `살링 싱`의 사저로서 중세시대 부호들의 삶의 자취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라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성과 고급스런 저택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된 이유는 자이살메르가 술탄 왕조의 세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타르 사막이라는 고립된 자연환경이 자이살메르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이유가 됐지만 무엇보다도 바티 라지푸트의 강력한 리더십과 이슬람의 영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달이 차면 기울듯이 자이살메르는 1947년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된 후 물 공급이 차단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뭄바이항의 해상 무역이 발달하면서 점차 세력이 쇠퇴해졌다. 지금은 파키스탄과 국경이 인접해 인도에서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며 사막의 독특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라자스탄주에서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자이살메르는 태고적부터 사막으로 인해 척박한 환경과 싸우며 현재까지 살아남은 도시다. 그중에서도 자이살메르 성은 전쟁ㆍ가난ㆍ슬픔ㆍ좌절ㆍ역경 등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묵묵하게 버텨온 현지인들의 자존심이자, 희로애락이 담긴 건축물이다. 아라비안나이트의 거대한 모래성을 떠올리게 하는 자이살메르 성은 해발 76m의 트리쿠타 언덕 위에 세워졌다. 사막의 모래 빛처럼 노란색으로 물든 자이살메르 성은 천 년의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시민들과 함께했다. 성 주변으로는 황토 빛의 민가들이 성냥갑처럼 네모반듯하게 서로 포개져 있고, 거리에는 우마차ㆍ자동차ㆍ릭샤 등이 질주하며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마치 천 년 전의 도시로 들어가는 듯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중세시대 낙타를 이끌고 험난한 타르 사막을 건너온 상인이나,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인물이 된 것처럼 눈과 귀는 타임머신의 세계에 머문다. 라자스탄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하게 보존된 성 안에는 구시가지 절반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인도의 수많은 성과 유적지가 있지만 이 성만큼 환상적이고, 인간적인 곳은 없다. 그 이유는 성 안에 일반사람들이 살고 있어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문명의 사회에도 불구하고 성 안은 중세 시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건축물과 민가들로 가득하다. 성 안으로 첫발을 디디면 사람과 짐승이 한데 어우러져 아비규환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광장 한가운데는 소들이 무질서하게 누워 있고, 좁은 길을 따라 들어선 기념품점,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 그리고 장사꾼의 터질 듯한 목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거리의 악사들의 음악소리 등이 뒤섞여 그야말로 혼돈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1m도 채 안 되는 좁은 골목길, 황금빛의 사원과 궁전, 그리고 형형색색의 집들이 저마다 독특한 광채를 뿜어내며 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북돋는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대끼고, 동물이 거리를 마구 누비는 모습들이 자이살메르 성이 가진 매력이다. 특히 마하라자의 거처였던 궁전 5층 꼭대기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면 `이것이 인도!`라는 말이 저절로 날 만큼 재미있는 느낌을 받는다.
옥상에서는 여행자들이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면 바닥에 그냥 주저앉거나, 팔베개를 하고 누워 한가로이 삶의 여유를 즐긴다. 파란색, 노란색 등 고운 빛깔로 장식한 민가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넉넉한 아주머니의 마음씨를 대하는 순간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성 벽을 따라 세워진 망루에는 작고 예쁜 카페들이 몇 개의 테이블을 놓고 차와 간단한 음식들을 팔고 있다.
오색찬란한 조명 빛은 없지만 드넓은 하늘을 천장 삼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태양빛을 머리에 이고, 발 아래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구시가지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차이(홍차에 우유를 탄 것)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된다.
● 인도 자이살메르! 어떻게 갈까
우리나라에서 인도의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천~델리 구간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9시간 정도 소요된다.
델리에서 야간 침대칸 열차를 이용하면 자이살메르까지 갈 수 있다. 기차로 20시간 정도 걸린다.
[글ㆍ사진 = 이태훈ㆍ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