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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관광지 탐방 - 프랑스 루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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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르에서 중세의프랑스를 만나다!

어릴적 우리가 읽었던 책 중에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동화가 있다. 마녀의 마법에 걸려 어느 숲 속의 왕국이 긴잠에 빠져버리고, 성안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마저 잠드어 버린다는 이야기, 작가 샤를르 페로(Charles Perrault)는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 있는 성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고 한다. 몇 백년이 지난 오늘날 이 성은 외벽의 색깔은 다르지만 미국이 자랑하는 디즈니랜드에서 거의 비슷하게 부활했다. 백마를 탄 왕자와 그를 기다리는 공주의 성. 우리는 이런 성들을 미국이 아닌 프랑스의 루아르에서 만날 수 있다.
프랑스 중서부 지방에 있는 루아르(Loire). 프랑스의 정원이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곳이다. 르네사으 시대를 전후로 번성한 크고 작은 성과 대칭의 미를 자랑하는 정원들 그리고 넓고 울창한 숲... 이런 것들이 모여 프랑스의 정원이라는 찬사를 얻어냈다. 루아르 강을 따라 고성 순례를 하는 것은 프랑스의 과거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숲 속에서, 강가에서 문득 문득 만나게 되는 고성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로 우리를 안내한다.
강 언덕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쉬농(Chinon), 소뮈르(Saumur), 앙부와즈(Amboise)와 같은 성들은 강변길을 달리면서 쉽게 바라볼 수 있지만, 샹보르(Chambord), 쉬농소(Chnonceau) 같은 성들을 보기 위해서는 작은 마을을 몇 개나 지나 다시 미로와도 같은 숲을 거쳐 가야 한다, 우거진 숲길 저만치에 성채의 끝자락이 언뜻 보이면 입에선 절로 가벼운 탄성이 새어 나온다.
쉬농(Chinon) 성은 잔 다르크가 영국의 침략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샤를르 7세에게 전했던 곳이다. 18세기까지 방치되었던 이 성을 19세기에 복구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던 듯하다. 거의 폐허가 되어 곳곳이 부서진 성곽만이 흐느는 세월에 운명을 맡긴 듯 쓸쓸히 남아있다. 잔 다르크와의 인연 때문에 쉬농에는 잔 다르크라는 이름의 광장과 거리가 있다. 쇠락한 쉬농 성과 달리 17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를 개막한 프랑소와 1세의 명에 의해 지어진 샹보르(Chambord)는 그 모습이 아직도 건재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 성은 왕과 절친했단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뒷받침 할만한 아무런 사료도 남아있지는 않지만, 다 빈치가 설계에 조예가 깊었던 점과 여러 왕들과의 낟다른 인연으로 말년의 삶을 프랑스에서 보낸 점, 성이 지닌 이태리적인 특색 등을 볼 때, 이러한 추측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이 성을 두고 프랑스 성들 가운데 가장 이태리적인 성이며 이태리풍의 성들 중에서 가장 프랑스적인 성이라고 일컫는다. 두 나라 건축 양식의 특색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수평으로 긴 좌우 대칭의 건물 구조를 이태리의 영향이라고 한다면 높은 지붕의 뾰족뽀족한 첨탑들이 갖는 수직성은 중세 고딕 양식에서 온 프랑스 고유의 전톹 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성은 왕실에 귀속된 성으로 주변의 다른 봉건 제휴들의 성들보다 그 규모 면에서 월등히 크다. 루이 13세는 이 성에서 시녀와 비밀리에 만났고, 루이 14세는 미녀 라 바리엘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루아르(Loire) 강 유역의 성들은 대부분 파리를 떠나 들짐승이 많은 이 고장의 숲을 샤낭터 삼아 찾아오는 왕들과 귀족들의 별궁이었다. 역대 왕들은 사냥철에 맞춰 이곳으로 내려오곤 하였다. 한 번 행차 때마다 왕족들이 파리에서 쓰던 집기들을 그대로 싸가지고 내려 왔다고 하니 그 행렬이 얼마나 길었는지 상상해 볼만하다. 루아르의 성들은 중세에 세워지 이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건축 양식이 첨가되는 과정을 반목하면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다등어지게 되었다. 그 큰 획을 그은 사건이 바로 이웃 나라 이태리에서 건온 르네상스 건축 양식이다. 성 한 체에서 프랑스 중세적 요소와 이태리 르네상스적인 요소들을 함께 발견하는 재미는 남다르다. 쉬운 예로, 아제 르 리도(Azay-le-Rideau)의 성벽 보루의 요철 형태의 구조물은 중세에서 온 것으로 군사적 방어를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그 위로 지붕이 얹어지면서 창문으로 바뀌게 된다.
애초, 르네상스 건축 양식은 프랑스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프랑스인들은 그들 고유의 전통적인 고딕 양식에 너무 오랫동안 쉼취되어 있었고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를 원치 않았던 그들이 르네상스 문물을 수용하여 발전시ㅣ켜 나가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프랑소와 1세의 정책 때문이다. 문화적 자존심이 남다른 프랑스인들은 그들이 이태리 예술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이태리 장식 예술을 그들 나름대로 재해석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들이 자랑하는 회색 이미지는 화강암을 사용하면서 덤으로 얻은 효과이다. 이 화강암은 기와의 재료인 검푸른 아르두아즈(Ardoise)와 함께 이 지방의 특산 광물이다. 아르두아즌 몇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이 지방 건축 자제의 근간을 이룬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높은 언덕이나 건물에 올라 도시 전체를 조망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이 때마다 건물들이 서로 약속이나한 듯이 모두 같은 색 비붕을 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도시든 시골이든 전국의 환경 미화에 열정을 쏟는 행정 당국은 루아르(Loire) 강 유역의 건물에 아르두아즈 지붕을 올릴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을 정도다. 지역 특색을 고려한 조화로운 도시 외관을 가꾸는 동시에 아르두아즈가 새로운 건축 자재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드는 사태를 미리 막아보자는 생각에서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화강암의 성과 아르두아즈 지붕뿐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땅굴집, 또는 혈거는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혈거란 땅 속이나 암반 절벽에 굴을 파고 그 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생활하는 주거 형태이다. 루아르에는 선사 시대를 방불케하는 이런 주거 형태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다. 옛날에는 외양간과 마구간이 허름한 농가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데 모여 있어 어디가 가축의 우리이고 어느 곳이 생활 공간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혈거가 유행했던 것은 지상의 땅에는 세금이 부과되었지만, 지하의 주거지에는 세금 면제 혜택이 주어졌던 당시이 사회 현실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는 이 독특한 주거 공간이 현대화되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레스토랑과 별장과  교회가 들어섰을 뿐더러 내부가 일년 내내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버섯 재배나 포도주 숙성에도 제격이다. 이렇게 굴이 많은 이유는 이곳의 지질이 파기 쉬운 화강암과 무른 석회암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왕과 귀족들이 살았던 고성과 중세의 가난한 농부의 동굴집, 그리고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아르두아즈 지븡의 건물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프랑스 루아르 강 유역 고유의 건축 문화를 보여준다. 시대에 뒤떨어진다 해서 함부로 무너 뜨리고 아무렇게나 다시 짓는 요즈음의 건축 현실관는 사뭇 대조를 이룬다. 자연과의 조화, 역사의 보존, 인간과의 조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루아르 사람들의 공존의 철학은 고성보다 더욱 아름답다.
우리는 루아르 강가에서 '오래된 만큼 앞서 간다'는 프랑스이 역설적인 건축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윗글은 대한항공 MorningCalm에서 발췌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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