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목각인형 마트로시카(Matryoshka)
러시아를 찾은 관광객들이 기념품을 사기 위해 모스크바 시내의 아르바트 거리나
이즈마일로프스크 노천 시장을 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각인형 마트로시카(Matryo- shka)다.
정교한 그림이 그려진 통통한
인형을 돌려서 열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인형이 나오고 그것을 열면 더 작은 인형이 숨어 있다. 손톱만한 크기의 가장 작은 것까지 10개가 넘는
인형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큰 인형 속에서 나오는 작은 인형은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그림도 조금씩 틀리다.
수 천
가지도 넘는 다양한 마트로시카를 구경하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마트로시카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을 갖고 보면 더 큰 재미를 느낄수
있다.
마트로시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어머니라는 뜻의 `마티’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 인형’이라는 뜻. 러시아
농촌의 다산(多産)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닭이나 곡식을 안고 전통의상을 입은 건강미 넘치는 러시아 농촌 여성을
형상화한 것이 전형적인 마트로시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가장 러시아적인 민예품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것은 19세기 말
러시아로 수입된 일본 인형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오늘날 마트로시카는 러시아 정서가 듬뿍 담긴 러시아 민예품의 상징이 됐다.
20세기 러시아 미술의 한 장르
마트로시카는 원래 단순한 민예품이나 기념품이 아니라 `미술품’이었다. 20세기
초부터 마트로시카가 러시아 미술의 한 장르가 되면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러시아 미술가들이 마트로시카 제작에 손을 댔고 심지어는 당시 유행하던
모더니즘이 마트로시카의 기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때의 마트로시카는 귀족과 부자들이나 소장할 수 있는 예술품이었던 것.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마트로시카의 제조방법이나 소재는 점점 현대화 되고 대중화 됐다. 예술가의 공방에서 장인정신이 가득한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던 마트로시카는
모스크바 근교의 세르기예프 바사트 등에 공장이 세워지면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트로시카 만들기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일일이 조각을 하고 그림을 새기고 변색을 막기 위해 굽는다. 특히 1~2센티미터 길이의 작은 인형을 만드는 데는 정교한 솜씨가
필요하다.
마트로시카에는 러시아의 역사가 담겨 있다. 정치적 격변기인 80~90년대에는 고르바초프와 옐친 등 최고 지도자들의 마트로시카가
등장했다. 러시아에서 마트로시카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푸틴 대통령의 높은 인기를
반영하듯 푸틴 마트로시카가 많이 눈에 띈다.
이렇듯 마트로시카로 민감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이나 민심을 읽을 수 있다. 이제는 미국의
클린턴이나 부시 대통령, 비틀스 등 외국의 유명인들도 소재가 되기 시작했다.
외국 대통령, 연예인도 소재로
또한 마트로시카로 풍부한 러시아 문화를 엿볼 수도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이나 러시아 민담의 장면 등 서사적인 그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의 굼(Gum) 백화점이나 공항 면세점은 쇼핑하기도
편하고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고급스러운 마트로시카도 많이 있다. 그러나 구경도 하고 가격을 흥정하는 맛도 보려면 앞에서 말한 이즈마일로프스크
시장이나 모스크바대 캠퍼스 옆의 레닌 언덕에 있는 노점상이 제격이다.
마트로시카의 가격은 2~3달러(한화 3천~5천원 정도)짜리부터 몇 백
달러가 넘는 `작품’까지 다양하다. 눈여겨보면 그림의 수준이나 색상에서 재료의 재질까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고급품은 바닥에
작가의 서명이나 공방(工房)의 이름이 있는 것이 보통.
노점상에서는 그림은 없고 인형 모양만 다듬어 놓은 목각인형을 팔기도 한다. 그림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사다가 직접 그림을 그려넣어 자신만의
마트로시카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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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치, 문화를 한눈에…러시아의 ‘어머니
인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