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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돌아본 ‘동화
속 도시들'
독일이라면 흔히 맥주를 떠올리지만 와인산지로도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러나 독일 와인에 문외한인 사람도 ‘모젤’이란 지명에는 선뜻 아는 척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어느날 와인 이름에 등장하는 그 모젤강과
주변 도시들을 둘러보게 되리라고 꿈에선들 생각할 수 있었을까
모젤강은 독일 국경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에서 시작해 동화속 풍경같은 아기자기한 구릉과 들판, 그 사이사이에 들어앉은 예쁜 집들을 끼고돌며
하염없이 유장한 흐름을 계속한다. 벤을 타고 강변 국도를 지나 3시간을 지나는 길을, 강물은 얼마나 오래도록 흘러갈까. 코블렌츠라는 도시에서
모젤강은 그 수명을 다하고 그 유명한 라인강에게 이름을 빼앗긴다. 라인강에 합류하는 것이다.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장관

대도시 프랑크푸르트를 벗어나 유럽의 4대 패션 도시라는 뒤셀도르프를 거쳐 모젤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출발점은 코블렌츠. 라인강과
모젤강이 만나는 지점에 요새처럼 자리잡은 도시다. BC 9세기에 세워진 로마의 도시치곤 현대식 건물도 자주 눈에 띈다. 첫 눈에 봐도
고풍스러움과 깔끔함이 혼재하는 묘한 매력이 풍긴다. 리프트를 타고 에렌브라이트슈타인성에 오르면 코블렌츠 시가지뿐 아니라 라인·모젤강의 만남이
한눈에 들어온다. 탄성이 절로 나올 수 밖에. 바그너의 `탄호이저’나 `방황하는 화란인’이 귓가에 들릴 듯 어울리는 풍경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이상하게 프랑스풍이 느껴진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공격을 받았고 이후 프렌치 이주자들에 의해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모젤강 투어는 강줄기를 따라 펼쳐진 국도를 타고 가는 드라이브 코스가 제격이다. 사진 애호가라면 연방 셔터를 누르고 싶은 충동을, 화가라면
언제라도 차에서 내려 캔버스로 붓을 가져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을 정도의 살아 움직이는 그림들이 잇따라 눈앞을 어지럽힌다.
코헴(Cochem)을 지나 베른카스텔 쿠(Berkas-telkues)라는 작은 마을에 짐을 풀었다. 마찬가지로 모젤강의 흐르는 물과 포도밭이
어우러진 곳. 모젤강 유역에서도 유명한 와인 산지 중 하나다. 이 곳에서 나는 독일 화이트와인의 참 맛에 빠지고 말았으니 그 어딘가를 찾아 떠난
여행은 결국 술을 찾아 헤맨 여행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모젤’은 사실 ‘모젤 잘 뤼베(Mosel-Saar-Ruwer)’다. ‘잘’과 ‘뤼베’ 역시 강 이름으로 모젤강으로 흘러드는
지류를 말한다. 독일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과 달리 화이트 와인이 주종이다. 이 곳에서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품질을 인정해주는 유명한
리즐링 와인들이 생산되는데 풍부한 향과 산미가 강한 맛, 생동감과 신선함이 있는 과일맛이 특징이다.
이 지역의 많은 포도밭에는 아픈 역사도 담겨 있다. 독일이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을 때 나폴레옹에게 이 지역을 점령당했고 나폴레옹은 수도원이나
교회가 소유한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은 뒤 전쟁자금 마련을 위해 경매로 팔아치웠다. 그렇지만 아픈 역사를 가졌다고 해도 한 잔 술은 마셔야 제
맛.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술은 산지에서 마셔야 제 맛이 난다는 의미)는 말을 핑계로, 와인 시음회를 빌미로, 나는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와인을 들이켜댔다. 그래도 질리지 않았던 건 각각의 와인이 가진 퍼스낼리티 때문일 것이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트리어(Trier)와 룩셈부르크(Luxemburg)로 가기 전에 베른카스텔 쿠에 대해 좀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이 진정 `나를 버림으로 인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자 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 있다면 `일상이 규정짓는 나’를 잊게
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베른카스텔 쿠는 이번 여행 중 나의 의식 세계에서 현실감을 완전히 분리시켜준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16세기 브뤼셀의 풍속화가 페테르 브뤼겔의 그림에 나올 법한 자그마한 마을 광장과 돌계단, 좁은 골목, 쓰러질 듯 버티고 서 있는 선술집들.
진정 나를 잊고 바라봤던 것은 모젤강의 풍경화 옆에 놓여있던 낡은 풍속화였다.
마르크스가 태어나 자란 ‘트리어’

트리어에 갔다. 베른카스텔 쿠에서 한 시간 남짓 강을 거슬러 간 곳. `제2의 로마’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 도시답게 당시에 지어진 성곽과
원형극장, 목욕탕들의 잔해물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400년 간의 로마가 살아 숨쉰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트리어의 로마 건축물들은 지난
86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도 기록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나의 발길을 잡아끈 것은 고대 유적이 아닌 칼 마르크스의 생가였다. 마르크스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런던에서 죽었다는 사실만큼 사람들의 기억속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태어나 자란 곳이라면 혹시나 그
방대한 사상의 한 자락이나마 붙잡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완벽에 가깝게 자료가 보존된 그 곳에서 마르크스의
숨결은 좀체로 느껴지지 않았다. 구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한지도 이미 오래. 마르크스의 숨소리는 화려한 자본주의의 불빛에 완전히 소멸된
걸까. 그의 진정한 숨결은 아마도 역사를 사는 인간의 내면에 영원히 살아있지는 않을까.
‘모젤강 거스르기’의 종착역은 룩셈부르크이다. 누가 룩셈부르크를 알까. 베네룩스 3국중 하나이고 작은 나라라는 정도외에. 룩셈부르크어(독일어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의사소통이 안될 정도로 달라진)가 있다는 사실, 그런데 국가 행정기관에서는 불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신문들은 대부분 독일어로
발행된다는 사실 등. 나는 정말 이 나라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 이런 나라가 있었구나. 지구 반대편 유럽 대륙에는 정말
`룩셈부르크’라는 나라가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숲이 있었고, 프랑스풍의 도시안에는 우아한 궁전이 있었고, 친절하고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던 것이다. 룩셈부르크에서의 짧은 체류였지만 `잘 몰랐다’는 이유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이 곳에 다시 온다면
부활절 전에 열리는 카니발과 4월 말에서 5월 초에 열리는 카톨릭 축제 옥타브(Octave)에도 가보고 싶다.
나는 다시 프랑크푸르트의 뢰머광장에 앉아 있다. 그런데 모젤강으로 떠나기 전 느꼈던 해방감은 더 이상 없다. 결국 나는 지구 반대편에 혼자
앉아있어도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지나가는 저 사람들은 여기 앉아 있으면서 나를 이방인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착각이었다. 영원히 벗지 못할 사슬을 진정 벗었다고 생각한 나의 착각이었다. `망각의 강’이 `고통의 강’으로 바뀔지언정 모젤강은 그냥 그대로
흐를 것이다. 다음날 나는 한 시인의 말을 위안삼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뻐근한 일상의 무게가 없으면 삶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영원히
허공을 떠돌 것이다.’
이글은 "연합뉴스"의 권혁창님의 글을 발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