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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세계의 컬트여행지]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베리아라는 지명을 듣는 순간,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란 사실 학창 시절 배운 세계지리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토의 땅 툰드라와 침엽수림지대인 타이가,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땅 정도. 조금 더 머리를 굴려보자면 19세기에 정치범들의 유형지였다는 정도일 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도 시베리아에 관한 정보란 요즘 여행객들이 찾는다는 바이칼 호수와 노보시비리스크,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 도시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목적지였던 시베리아 중앙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에 관한 정보라고는 예니세이강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계 3대 수력발전소 중 하나라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은 이렇듯 우리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하지만 이 일대는 대형 신석기시대의 묘, 신석기인들의 사냥감인 동물과 훈족의 모습까지 새긴 샬라볼리노 마을의 암각화, 한때 레닌이 유형생활을 했던 슈센스코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는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다.

**신석기부터 레닌까지 인류의 역사가 남아있는 대평원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 내린 순간 ‘여기가 시베리아로구나’를 단연 실감케 했던 것은 서늘한 바람과 맑은 공기였다. 서울의 공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량한 공기. 게다가 높고 푸른 하늘 아래로 시계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밀밭, 검붉은 땅 위에 수직자세로 선 자작나무들은 이국의 여행자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은 러시아연방공화국을 형성하는 6대 지역 중 하나로 동서 길이는 1250㎞, 남북 길이는 3000㎞에 달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에는 하카시아공화국과 에벵키 자치구, 타이미르스키 자치구가 포함돼 있으며 스텝과 타이가, 툰드라, 극지사막 등 다양한 지형이 나타난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남부 일대는 시베리아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거대한 호수를 연상시키는 예니세이강을 따라 크라스노야르스크 남부지대로 향했다. 하카시아공화국에 들어서자 드넓은 초지에 검붉은 거석이 드문드문 서 있는 모습이 영국의 스톤헨지를 닮았다. 가까이서 보면 어른 허리께 정도 오는 작은 돌들이 대부분으로 스톤헨지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10m가 넘는 거석도 있다고 한다. 낮은 구릉 위에 원형 혹은 방형으로 검은 돌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 역시 신비스럽다.

이들은 고대 무덤인 쿠르간의 범위를 표시하기 위한 일종의 지표석이다. 기원 전 10세기쯤 이 땅에 형성된 시베리아-스키타이 계열의 타가르 문화의 산물이다. 스키타이족들은 시신을 넣은 목관 위에 돌을 쌓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덮은 뒤 큰 돌로 무덤의 경계를 표시했던 것이다. 무덤을 발굴한 결과 많게는 20여 명이 함께 묻히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무덤은 하카시아공화국뿐 아니라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 남부 일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시베리아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미누신스크 박물관에 가면 하카시아공화국과 투바 공화국, 미누신스크 분지 등에서 발견된 토템 신앙과 거석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살아있음의 흔적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은 쿠르간뿐 아니라 암각화에서도 확인된다. 전형적인 러시아의 농촌마을 샬라볼리노에 가면 기원 전 7000년쯤부터 기원 후 14세기까지 이 땅을 스쳐간 인간들이 남겨놓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마을 뒤편 투바강을 따라 3㎞가량 형성된 샬라볼린스키 암각화에는 풍요로운 사냥을 기원했던 신석기인들의 바람이 담긴 사슴과 무스 등의 형상에서부터 시베리아를 따라 유럽으로 진출했던 훈족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소녀들과의 만남

기록에 대한 열망이 인간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열망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암각화를 보며 되새기고 있을 때였다. 푸른 눈에 금발머리를 한 소녀들이 내 팔을 잡고 학교에서 배운 초보자 수준의 영어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아냐고요, 얘는 마리냐, 얘는 야냐예요. 우린 11살이에요.” 묻지도 않았는데 금발머리에 푸른 눈을 한 소녀들은 한 명씩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고 내 이름을 물었다.

시베리아에서도 깊숙이 박힌 오지에 사는 금발소녀들에게 검은 머리의 이방인은 아주 신기하고 낯선 존재인 모양이다. 별 것 아닌 질문과 대답에도 러시아어로 속닥이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이 아이들은 내가 찾았던 문화재 발굴 현장의 일꾼이었다.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만 알던 암각화의 훼손이 심해지면서 최근 러시아의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펼치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어린 학생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발굴 작업을 도왔다. 내가 방문하기 하루 전 찾았다는 사슴 암각화도 소녀들의 눈썰미 덕택에 발견했다고 했다.

때묻지 않는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은 수천년을 이어온 문화재를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대화를 나눴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사진을 보내 달라기에 e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말에 아이들은 정성들여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그러나 수첩을 건내받은 후 e메일 주소가 아니라 러시아 알파벳을 필기체로 쓴 우편 주소를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사와는 무관한 듯 오지에 사는 아이들은 인터넷을 몰랐던 것이다. 한 아이는 기념품이라며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력발전소가 새긴 10루블짜리 지폐까지 주었다. 카메라만 달랑 메고 이곳을 찾은 내겐 마땅한 답례품조차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하나하나 나를 껴안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라봤다. 작별 인사를 하고 났는 데도 아쉬웠던지 네 명의 소녀들은 내 양 팔짱을 끼고는 버스 앞까지 배웅을 해줬다. 버스에 있던 가방에서 쓰던 색연필이라도 줄까 싶어 챙기는 사이, 어느새 아이들은 잰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카메라로 마구 찍어댔던 어떤 시베리아의 풍경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대치 않았던 러시아 소녀들의 따뜻한 환대에 여행길 내내 감동했다. 척박하고 황량하다는 시베리아에 대한 인상은 이 소녀들로 인해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아직 아이들에게 사진을 부치지는 못했다. 이번 주말엔 꼭 사진과 함께 그들이 모르는 미지의 나라, 한국을 떠올릴 만한 선물 몇 가지를 넣어 소포를 부쳐야겠다.



▲여행길잡이

크라스노야르스크로 들어가려면 비행기를 이용하거나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야 한다. 과거 인천~크라스노야르스크간 직항이 있었지만 현재는 중단됐으며, 크라스노야르스크와 중국 베이징을 연결하는 노선이 있다. 베이징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기차로 하카시아공화국이나 투바공화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차는 한국과 1시간이 난다. 위도가 높아 여름에는 백야현상이 나타난다. 숙소의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다. 여름철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숙소가 다반사이며 호텔의 수준은 열악하다. 좀더 시골로 들어가면 ‘푸세식’ 화장실은 기본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갈 것. 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에는 레닌기념관과 화가 수리코프의 박물관이 있다. 슈센스코에는 레닌이 유형 당시 거처하던 집과 19세기 말 시베리아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시베리아 민속박물관이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글·사진 윤민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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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8301018301&code=900306)

출처 : Tong - 화려한 飛上™님의 북중남미/러시아/유럽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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