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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주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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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넘쳐나는 명품, 넘쳐나는 노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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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들은 내공이 꽤 강하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분수껏 사는 내공을 쌓지 않고, 허영심에 부초처럼 흔들리다가는
당장 쪽박 차는 곳이 파리이기 때문이다.
파리만큼 극과 극의 대조적인 얼굴을 압축해놓은 아수라 같은 도시가
또 있을까. 1789년 대혁명 전의 프랑스와 혁명 후 프랑스가 현대판으로
절묘하게 섞인 듯한 모습이 파리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한국의 좌파가 평등을 구현하는 모델로
바라보는 곳도 프랑스지만 한국에서 명품 쇼핑족이 제일 먼저
달려오고 싶어하는 곳도 프랑스 아닌가. 평등지향적인 이념도,
가장 불평등한 신분 문화도 어지럽게 뒤섞인 곳이 파리다.
지난 여름, 평소에도 많던 노숙자가 부쩍 늘었다.
시내로 들어서는 길, 시민단체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텐트를 나눠줘
도심 대로변 곳곳에 노숙자가 캠핑하듯 텐트를 쳐놓고
삼삼오오 앉거나 누워 있었다.
거기서 불과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은 럭셔리 브랜드가 몰려 있는
몽테뉴 거리. 한국은 이제 막 럭셔리 시장이 커지면서 청담동 하나만으로도
위화감이니 어쩌니 난리지만 럭셔리산업의 중심지 파리는 화려하기로 치면
그 수십 배, 수백 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샹젤리제의 옆구리로 뻗어 있는
몽테뉴 거리, 최고급 보석 가게가 빙 둘러싼 방돔 광장,
그곳에서 이어지는 생토노레 거리…. 할리우드 스타도, 중동의 부호도,
아시아 부자도 돈 싸 들고 쇼핑하러 달려오는 ‘세계의 부티크’다.
발에 차이는 게 명품 브랜드요, 손에 손에 쇼핑백 든 사람 천지다.
300년 전 긴 드레스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밤마다 연회가 열렸던 그 공간.
왕과 귀족이 누렸던 호사를 이제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현대판 귀족산업으로 둔갑시킨 본산지도 파리다. 쓰러질 듯 가녀린 몸매에, 분가루 뒤집어쓴 듯
뽀얀 얼굴, 머리는 참기름 바른 듯 차르르 빗어 넘긴
예쁜 프랑스 남자가 “마담, 뭘 드시겠어요”하고 서빙하는
고급 레스토랑에 앉으면 백작 부인으로 되돌아간 착각에 빠진다.
빈부격차 없는 도시가 어디 있으랴만, 파리만큼 빈부격차가 낳는
극단적 삶의 형태를 좁은 공간에 압축해서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그 화려한 도시에서 분수껏 살아가는 파리지앵을 보면서 “내공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차라리 넘쳐나다 보니, 그 다양한 군상을
한눈에 보면서 스스로 허영에 묶이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허영심의 내면을
그저 연극 무대 보듯 관조하게 되는 것 아닌가도 싶다.
그 비슷한 경험을 했다. 파리 도심에 가면 중동 부자,
그들의 여자가 종종 눈에 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까만 벤츠가
미끄러지듯 서면 히잡(머릿수건)을 쓴 무슬림 여성 몇 명이
아이들 손을 잡고 내린다. 어느 날엔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시꺼멓게 부르카로 뒤집어쓴 무슬림 여성이 그 비싼 브랜드를 쇼핑하러 온 것도 봤다.
“아니, 만날 까만 천을 온몸에 둘러쓰고 다니는데 비싼 옷이랑
백은 사서 어디에 쓰나.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입어 보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세히 보니 크리스찬 디올 스카프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도 있고,
시커먼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은 무슬림 여성이 한 손에는
샤넬 백을 들고 가는 게 아닌가.
그걸 보면서 부르카 속에 갇힌 채 물질적 욕구로 채워가는 삶보다는
소유하지 않아도 내가 선택하는 열린 자유가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영심의 내면은 쓸쓸하고 공허했다.
강경희 조선일보 특파원 kh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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