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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행복하게 사는 기술을 가르칩니다.
행복하게 사는 기술을 가르칩니다. 행복’이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사람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소홀히 여겨지곤 하는 행복에 눈을 돌리고 있다.

연구기관과 대학에서는 국가별 행복지수를 매겨 발표하고, 긍정심리학과 ‘행복경제학’ 등 행복 연구 활동도 활발하다. 미국 대학들은 행복 관련 강좌를 개설해 인기를 끌고 있고, 영국 정부는 중등교육 과정에 ‘행복수업’을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버크셔주 크로손의 사립 고등학교 웰링턴 칼리지는 중고등학교로는 처음으로 행복수업을 도입해 주목받고 있다. ‘청소년 행복하게 만들기 프로젝트’인 행복수업의 현장을 소개한다.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숨을 고르세요. 호흡에 집중하고요. 가치 있는 일 하나를 생각한 후 숨을 쉬세요.”

지난 15일 영국 버크셔주 웰링턴 칼리지의 ‘행복수업’ 시간. 교과서를 펴는 대신 편안하게 호흡하라는 교사의 지시로 수업이 시작됐다. 3분 정도 지나 담당교사인 이언 모리스(30) 선생은 화가 났을 때 육체적으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이어 감정(emotion)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모리스 선생은 학생 2명을 앞에 세웠다. 한 학생은 예술가, 또 한 학생은 피조물이라 생각하고 화났을 때 표정이나 모습을 만들어 보라는 주문에 이들은 자기 생각을 몸으로 표현해 냈다. 화가 날 때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나열해 보라고 하자, 학생들의 입에서 테스토스테론, 아드레날린, 심장 박동, 몸의 긴장, 얼굴 붉어짐, 잘못된 의사 결정 등이 튀어나온다.

모리스 선생은 학생들을 모두 일으켜 세운 뒤 “정말 화가 났던 때를 생각해 보라”면서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라고 물었다. 학생들이 내놓은 대답은 숨쉬기, 베개 때리기, 눈감기 등등. 분노에 관한 짤막한 시청각 교재를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교사와 학생들은 화가 났을 때는 냉정을 되찾고, 숨을 가다듬거나 눈을 감으며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리스 선생은 “화가 났을 때는 에너지를 긍정적인 곳으로 치환하라.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라”고 갈무리하며 40분짜리 수업을 끝냈다.

행복수업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교사가 주제에 맞게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하면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밝힌다.

행복수업 총책임자이기도 한 모리스 교사는 “행복은 시험 이상의 것이며, 교육이 이뤄야 할 것”이라며 이 수업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행복수업의 세 가지 목표는 학생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것, 삶에서 관계를 개선하도록 하는 것, 행복의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학생은 12명. 한 반에 많아야 20명을 넘지 않는다. 웰링턴 칼리지( 9∼13학년)의 10∼11학년 학생은 2주에 한 번씩 수업을 들어야 한다. 행복수업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긍정심리학을 가르치는 닉 베일리 교수가 고안해 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수업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주목하고 있다. 미국에서 적지 않은 대학이 긍정심리학을 개설하고 있지만, 중고교에서 ‘행복수업’을 도입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웰링턴 칼리지의 앤서니 셀던 교장은 “수업을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결석률이 줄고 좋은 행동이 늘어나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올 9월 청소년 문제를 줄이기 위해 행복수업을 공교육 과정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서부 도시 맨체스터 사우스 타인사이드와 한 농촌 지역 공립학교 두 곳에서 11세 학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시범 실시한 뒤 성과를 거두면 공립학교 정규 교육과정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영국은 유럽 국가 중 10대 임신, 흡연, 음주, 마약중독, 우울증, 자살 등의 비율이 높은 수준이다. 한 조사에서 청소년의 10%는 자살 욕구, 지속적인 절망감 등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5년 전만 해도 우울증 환자의 평균 연령이 30세였지만 지금은 14세로 급격히 떨어졌다.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학교 당국이 몇몇 비행 청소년들에게만 관심을 쏟을 뿐, 파괴적인 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정서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학생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내에서 행복수업에 비판적인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디펜던트, 데일리 메일, 타임스 등 일간지들은 ‘평범한 이들을 위한 '처방전’, ‘지나치게 감상적’, ‘괜찮은 동물을 키우는 정석’이라는 등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브라이튼 칼리지의 리처드 케언스 교장은 지난해 “수업을 우습게 만들려는 전국적인 강박관념 때문에 강의가 너무 쉬워지고 있다”며 “행복수업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이혁진(17)군은 “축구나 럭비 시합에 갔을 때 ‘잘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더니 시합이 재미있고 편해지더라”며 행복수업이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해줬다고 밝혔다. 프랑코 보이델(17)은 “행복수업은 재미있으면서도 편안하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계획했던 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리스는 “학부모들도 행복수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등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웰링턴 칼리지의 앤서니 셀던 교장(사진)은 “영국의 학교 교육은 기본적으로 균형감을 상실했다”면서 “시험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시험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은 좋은 성적표를 받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주에 속한다고 강조했다.

셀던 교장은 “우수한 성적을 받고도 불행한 학생들을 수없이 봐왔다”며 “이들이 삶의 균형을 잡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면 자아의 여러 면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공하는 것이 존경받는 동료, 가치 있는 친구, 애정이 넘치는 부모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면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한 것은 2005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긍정심리학을 가르치는 닉 베일리스 박사를 만나면서부터다. “18세에 학교를 졸업할 때 행복한 젊은이들을 만드는 것이 지난 10년간 교장으로서 최대 관심사였다”면서 “이런 생각이 비현실적인 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학교 수업에서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셀던 교장은 행복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수업에서 고통과 행복을 겪는 이유, 부정적인 감정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법 등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성격과 습관이 형성되기 전에 학교에서 행복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간이 흐른 뒤 좋은 습관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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