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로투른(Solothurn)? 취리히, 제네바, 바젤, 베른이 아니고? 스위스 관광청 어안이 벙벙할 만했다.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 빙하투어에 기어이 졸로투른을 봐야겠다며 일정에 넣어 달라는 억지스러운 요청이니.
이게 다 `페터 비히셀(Peter Bichsel)` 때문이다. 궁금한 매일경제신문 독자분들은 `책상은 책상이다`는 책을 보면 된다. 이 책, 한마디로 발칙하다. 나오는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우스꽝스럽고 서글픈 세상의 아웃사이더들이다. 잠깐 볼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지만 믿지 못하는, 그래서 기어이 확인하러 길을 떠나는 남자쯤은 약과다.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남자에 수십 년간 세상을 등진 채 혼자 발명에 전념하다 천신만고 끝에 발명해 낸 물건이 흔하디 흔한 텔레비전임을 알게 된 발명가까지 `엉뚱맨` 일색이다.
책을 덮은 뒤 불현듯 든 생각. 아폴로 달 착륙도 `가짜`라는데, 과연 지구는 둥근 걸까. 책상은 왜 책상으로 불려야 하는 걸까.
그러다 이 책을 쓴 페터 비히셀이 산 곳이 졸로투른이라는 것을 얼핏 보고 만 것이다.
결국 스위스 관광청의 특별 제안. 니(?) 혼자 가란다. 기꺼이 고개를 끄떡이고 나선 길, 황당하다. 그래도 든든하다. 왜냐고? 믿는 구석, 아니 믿는 앱(애플리케이션)이 있으니까. 스위스는 그렇다. 기차를 포함해 트램, 버스, 심지어 크루즈까지 모든 대중교통이 그 정확하다는 스위스 시계처럼 엄격히 맞물려 돌아간다. 그러니 SBB(스위스철도청)라는 앱만 스마트폰에 깔아두면 못 갈 데가 없다.
즉시 앱을 가동해 도착지 졸로투른을 치니 올텐에서 갈아타고 가면 된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졸로투른. 역에 내린 첫 느낌은 이랬다. 마치 민낯의 여인을 아침 이부자리에서 본 황당한 느낌이랄까. 한데 그게 점점 변한다. 이내 익숙해지더니, 편해진다. 이날 이후, 누군가 기자에게 졸로투른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준다. 스위스의 화장발 말고, 생얼(생얼굴)을 봤냐고, 그게 졸로투른이라고.
맞다. 워낭 소리 `댕댕` 울리고, 만년설에, 산 중턱마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알록달록한 스위스를 떠올린다면 졸로투른에서 실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라도, 아니 한 시간이라도 이곳에 제대로 머무른다면 그게 순식간에 `정`으로 바뀐다. 처음엔 충격(?)적인 생얼이라도 자꾸 보면 정드는 것처럼.
사실 한국인들에겐 익숙지 않아 그렇지 스위스 현지인들에겐 가장 가고 싶은 도시 1순위로 꼽히는 곳이 졸로투른이다. 우리야 융프라우를 갈 때도 인터라켄으로 바로 기차를 타고 달리지만, 현지인들은 졸로투른~인터라켄 유람선을 탄다. 위치는 수도 바젤의 구도시 아레 강 인근. 강을 따라 유독 바로크 양식의 오랜 중세 도시가 눈에 띈다면 바로 거기다.
이 도시가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는 건 숫자 11과 얽힌 묘한 인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만난 한 중년 여인이 연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또박또박 설명을 해 준다.
"중세시절 이곳엔 공교롭게도 지역 보좌 판사 11명이 있었다. 1481년에는 11번째로 스위스 연방 중 한 주가 되었다"고.
주로 승격하기 전에도 11개 대법관 재판소와 11개 동업 조합이 있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 탄성을 연발하는 기자에게 쐐기를 박는 말. 지금도 주교와 성당의 참사원이 11명이고 탑, 분수, 교회, 돌계단, 심지어 교회 안 종 숫자까지 모조리 11개라는 것.
그러고 보니 인근 베른 시내 분수 숫자도 11개다.
어이가 없다. 상식이 돼 버린 `럭키 세븐`은 없고, `럭키 일레븐`이 있는 셈이다. 그제서야 페터 비히셀식 뒤집기 사고가 나온 배경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전경의 포인트라는 상트 우르센 대성장. 스위스의 바로크 건축물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성당이다. 지어진 것은 17세기 말. 뒷마당으로 향하니 첨탑으로 향하는 문이 보인다. 한데 입장료가 3프랑이라니. 예까지 와서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돈까지 내고, 좁을 통로로 60m 높이라는 첨탑까지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이 대략 10분.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비로소 꼭대기다. 그리고 펼쳐진 중세의 전경이라니.
다음 포인트는 누구나 약속 장소로 잡는다는 그 유명한 졸로투른 시계탑이다. 12세기에 만들어졌으니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화려한 부분만 16세기에 다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1583년 시계장치 밑에 만들어졌다는 도시의 수호성인 우르스(Urs)와 빅토르(Viktor)가 색다를 뿐, 서울역 시계탑 만큼이나 별다른 느낌은 없다.
오히려 기자 눈을 사로잡은 건 시립 미술관. 이곳엔 유독 명화가 많다. 대표적인 게 한스 홀바인의 1522년 작 `졸로투른의 마돈나` 같은 것들이지만 정작 관심은 따로 있었다. 기자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건 구스타프 클림트의 1902년 작 `황금 물고기(150×46㎝)`.
이 그림이 엉뚱하고 발칙하다. 나신으로 커다란 엉덩이를 들이민 채 능글능를 기자를 쳐다보고 있는 도발적인 여인. 과연 유혹일까. 아니다. 입가에 슬그머니 번지는 저 미소. 뭔가 불편하다. 이 작품 원제는 `비평가들에게`. `학부그림`에 거세게 쏟아진 비판에 대한 클림트의 응답이 바로 이 작품이다.
그러니, 저 야릇한 웃음은 유혹이 아니라 비판에 대한 대안의 비웃음이다. 이 지점, 저 그림에서 별안간 페터 비히셀이 짓고 있을 은밀한 비웃음이 겹쳐진다. 나도 따라 씨익 웃는다. 이 야릇한 웃음, 스위스의 화장발 융프라우 알프스 루체른만 보고 가는 여행객들을 향한 것이다. 스위스의 생얼, 졸로투른. 꼭 한번 둘러보시라.
※취재 협조=스위스관광청
[졸로투른ㆍ인터라켄(스위스) = 신익수 여행ㆍ레저전문 기자]
[매일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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